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일자별 경과/2019년 8월 (문단 편집) == [[8월 25일]]: [[물대포]] 등장, 실탄 사격으로 대표되는 경찰의 강경 == [[파일:HongKong_2019_Pistol_man.jpg]] 8월 26일 오전에 홍콩 시민운동가 [[조슈아 웡]] 트위터에 올린 사진. [[https://mobile.twitter.com/joshuawongcf/status/1165809909708939264|#]] 이번 집회는 [[췬완선]] 라인인 콰이충과 췬완 지역이다. 집회 참가자는 전날처럼 소수 인원인 1000명에 불과했으나 역시나 인원이 적은 대신 대부분 과격파들이라 충돌이 예상됐다. 게다가 이 지역은 백색테러가 일어난 지역이고 백색테러 배후로 의심되는 줄리어스 호(何君堯, Julius Ho) 입법회 의원의 입김이 강해 과격 소수파로 구성된 시위대가 과격시위를 벌일 위험이 컸으며 따라서 경찰 역시 강경진압을 전제로 대비했다. 이 집회에 앞서 [[홍콩 섬]] 센트럴에서 '''경찰 친족 및 친구들'''로 구성된 평화집회가 열렸다. 이들은 자신들은 경찰가족으로 경찰을 지지하지만 독립조사위원회는 꼭 열어야 한다고 하였다. 전날 충돌과 이 날 콰이충 지역에서 충돌과 달리 그래도 비폭력 기조 자체는 계속 유지되었단 것을 이 집회 참가자들이 보여주었다. 콰이충 지역 집회도 처음엔 평화시위였다. 목적지인 췬완 워터프론트 공원에 집결한 시위대 대부분은 '''독립조사위원회 설치'''와 '''홍콩의 민주화''' 등을 요구하며 평화 집회를 갖고 대부분 해산했다. 남아 있던 인원들이 과격파들 뿐이었단게 문제. 이들은 췬완 지역의 주요 도로를 점거하고 바리케이드를 설치해 경찰이 못 넘어오게 막았으며 이번에는 벽돌을 집어던져 바리케이드를 만드는 등 한층 과격해졌다. [[MTR]]은 '''점거금지명령'''을 받아서 8월 23일 부로 '''역 시설 및 전동차에 대한 점거행위를 일절 금지했다.''' 불복종운동으로 많은 피해를 보고, 경찰이 역 안에까지 들어와 최루탄을 갈기는 등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 격이 되자 열받아서 점거금지를 먹여 다시는 시위 자체를 못하게 한 셈이다. 이제 시위대는 점거할 수 있는 곳도 없다(...). MTR사도 홍콩 정부가 대주주인 사실 상 국영기업인 만큼 정부의 대응이 강경책임을 다시한번 확인해 준 셈이다.[* 앞서서 시진핑은 '''군대를 동원할 필요 없이 준엄한 법집행을 하라'''고 지시했던 걸로 알려져 있으며 실제로 이 지시가 나온 후 정부 대응이 강경책으로 일관 중이다. 경찰의 무력도 올라가고 있다.] 이 날은 [[췬완선]] 운행을 타이워하우에서 타절하고 췬완 역, 그리고 경찰이 난입해 최루탄을 발사하는 바람에 항의가 몇 차례 들어온 콰이퐁 역 등을 안전상 이유로 폐쇄했다. 역시나 시위대의 퇴로를 막아 버린 셈. 대치 중 경찰이 이번에도 최루탄을 선빵으로 쏘고, 흥분한 시위대는 도주 과정에서 쇠파이프 등을 집어 던졌으며 [[화염병]]이 던져졌으나 위력이 약해서 금방 꺼졌다. 경찰은 이 날 최루탄에 그치지 않고 [[물대포]]차를 처음으로 출동시켰다! [[장갑차]] 호위까지 받으며 2대의 물대포차가 거리에 등장했고 단순 위협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물대포를 힘껏 쏘면서 시위대를 향해 전진했다. 시위대는 물대포차가 진짜 등장하자 패닉에 빠져 도주, 해산하기 시작했으며 대부분 근처의 쇼핑몰 등에 은신했다. 이번에는 사람을 향해 쏘진 않았으나 거리에 물대포를 힘껏 발사했으며 그 과정에서 도주하다 넘어진 시위대 일부가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 다음에는 한국에서 2008년 촛불시위 진압때 썼던 형광물대포나 최루액 혼입 물대포를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제 안전모나 복면도 무용지물이 되었다. 물대포 수압으로 안전모 따위는 거뜬히 벗기며, 대부분 시위대들이 자빠져서 경찰에 체포되어 버릴 것이다. 형광물대포는 특히 과격 시위자를 색출하는 용도로 유용히 쓰이며 이거 맞으면 마스크나 복면으로 얼굴 가려도 이제 소용없게 된다(...). 시위가 더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증명만 해버린 셈이다. 그리고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시위대에게 밀려서 [[홍콩 경찰]] 중 한 명이 뒷걸음질을 치다가 넘어져 시위대에게 집단구타를 당할 위기가 되자, 동료 경찰이 허공을 향해 권총 실탄을 발사하고 경찰들이 실탄이 장전된 권총을 시위대에게 겨누어 물러서게 했다. [[https://m.yna.co.kr/view/AKR20190825055200009?section=news|#]] 이 발포는 3개월 간에 걸친 홍콩 시위 중 최초로 실탄이 사용된 사례가 되었다. 시위대를 조준하지 않은 경고 사격이었기 때문에 발포 자체로 인한 시위대의 인명 피해는 없었고, 시위대에게 둘러싸인 홍콩 경찰도 구출되었다. 그러나 [[홍콩 경찰]]은 공포탄 없이 무조건 실탄을 쏘는게 원칙인지라 향후 비슷한 상황이 다시 벌어지면 그땐 유혈사태가 불가피하다. 경찰 관계자도 '''경찰관이 생명의 위협을 느낄 경우 발포가 가능하다'''며 사실상 앞으로 폭력시위는 실탄 발포가 가능하다고 엄포했다. 실제로 이 날 경고사격으로 대부분 시위대가 쫄아서 도주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몇 사람 죽어 나갔을 수도 있고 그랬다면 홍콩 시위는 두달만에 '''실탄 발포로 인한 유혈사태'''로 종결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시위대들도 총소리에 놀라 혼비백산해 버렸다.[* 군 훈련소에서 [[사격 훈련]]을 처음 할때 자기 총소리에 놀라는 후보생이나 훈련병이 많다. 총을 벗으로 삼아야 하는 군인도 이런데, 총 구경도 못해 본 일반 민간인들은 말이 필요없다. 시위 참가자 대부분은 식민지라 자체 군대도 없고, 실탄 사격을 본적도 들은적도 없어서 총소리에 놀라는게 당연하다. 과거 역사에서도 자신들이 쏜 총소리에 자기들이 놀라 전열이 무너져서 패배한 사례가 많다. [[병자호란]] 당시 [[쌍령 전투]]가 대표적 예.] 한편 [[물대포]]도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작정하고 쏠 경우 사람 여럿 간단히 날려버릴 수 있다. 직사로 쏘지말라는 원칙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직사로 발사할 경우 안면부를 정면으로 가격당한 사람은 진짜 머리 터져 죽을 수도 있다. 2015년 민중총궐기 때 백남기 씨가 이렇게 직사 물대포를 맞아 사망했다. 수압이 아주 강력하기 때문이다. 시위대가 사용하는 복면/마스크나 안전모는 전혀 방호 능력이 없어 물대포에 안전모는 깨져버릴 것이고 고글도 깨져서 더 큰 부상을 입는 등 무용지물이 된다. 시위대도 물대포의 공포는 알고있어서, 물대포차가 등장한 것도 모자라 실제로 시험방수 격으로 길거리에 물을 마구 뿌리자 혼비백산했으며, 시위 참가자 몇 명이 미끄러져 경찰에 그대로 체포되어 버렸다. 기존까지 마주치던 최루탄과는 차원이 다르다. 왜 진작 경찰이 물대포를 쓰지 않았나 싶을 정도의 위력을 보이는 '''흉기'''로 시위대가 겁 먹고 패닉에 빠질수밖에 없었다.[* 전술했듯 패닉에 빠진 시위대 대부분은 근처 쇼핑몰로 도망가 숨어 있다 해산했다. 일부는 삼수이포로 이동해 침례대학 학생회장 등이 구금되어 있는 삼수이포 경찰서 근처에서 시위를 벌이려다 미리 대기하던 경찰에 대거 체포되어 이들도 해산되었다.] 물대포와 실탄 사격 등 경찰의 무력진압에 겁 먹은 시위대 대부분은 근처 쇼핑몰 등에 피신했다 흩어졌다. 대부분은 그냥 겁 먹고 귀가해 버렸고, 삼수이포 지역에 사는 시위대 일부는 다시금 삼수이포 경찰서 앞으로 갔다가 대기 중인 경찰에 의해 진압당해 또 한번 대규모 체포가 이어졌으며, 침사추이 쪽에 거주하는 시위대 일부는 크로스하버 터널의 무인 톨게이트를 파손했다. 사람이 없이 [[옥토퍼스 카드]]를 받는 영업용 차량 전용 톨게이트라 공격해도 후폭풍이 없어 타겟으로 삼은 듯 하다. 이번에는 비난여론을 의식했는지 도로를 막진 않고 유리창 일부만 파손하고 도주했으며 폭동진압경찰이 [[홍함역]] 근처에서 마구잡이 불심검문을 하였다. 그리고 전날 충돌이 일어난 웡타이신의 경우, 또한번 시위대가 이동할 것이란 첩보를 입수한 경찰이 쇼핑몰에 갑자기 들이닥쳐 평화롭게 쇼핑하고 밥 먹던 시민들을 마구잡이로 불심검문하고 시민들이 놀라서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쇼핑몰을 이용하던 지역 주민 대부분은 시위와 무관한 사람들이었으며 이들은 화나서 경찰에 소리지르며 항의했다. 평화롭던 일상이 경찰 난입으로 깨져 버렸고, 경찰이 위협적으로 다짜고자 아무 사람이나 젊은 사람이다 싶으면 붙잡아 정지시켜 불심검문했기 때문이다. 이날 쇼핑몰 이용 고객 대부분은 주말을 맞아 가족 단위로 외식을 하러 온 사람들이나 놀러 온 학생들이었다. 췬완 지역과 삼수이포, 크로스하버 터널 무인 요금소에 난입이 있었던 홍함 지역 등에서 대규모 체포가 이어졌고, 이제는 물대포에 실탄까지 등장하는 등 경찰이 최고 수위의 무력을 쓰기 시작하면서 시위가 더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것만 입증한 꼴이 되었다. 한편 민간인권전선은 8월 31일 대규모 집회를 또한번 계획했으며 일련의 폭력사태들을 인식해 비폭력 기조를 유지하자고 호소하고 있으나 경찰이 외곽 지역들에서 충돌을 이유로 승인을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 민간인권전선은 홍콩의 야당들과 기독교계, 인권 변호사 등이 연합한 시민단체 모임으로 이 단체는 한번도 폭력시위가 난 적이 없었다. 가장 중요한 고비이던 8월 18일 시위도 이 단체가 주도했고 이땐 자정작용이 있어 [[교사]]나 [[목사]] 등 과격 성향의 학생들을 통제하며 말리는 사람들이 등장했었다. 학생들에게 '''그만 집에 돌아가자'''고 경찰이 쓰는 피켓과 비슷한 피켓을 휴대하며 확성기로 방송해 충돌을 막았던 게 이들. 조직화된 시위에 170만 명이라는 다수 인원이 참가한지라 이땐 과격 성향 시위대도 눈치를 볼수밖에 없었고 자정작용이 있었으나 1000명 밖에 모이지 않은 개인 주도 집회는 그런 자정작용이 없었던 게 문제다. 이렇게 되면 소수 과격파 vs 다수 온건파로 시위대 자체가 분열될 가능성이 높으며, 실제로 공항 외곽시위나 캐시아웃 투쟁 등은 모두 실패했다. 온건 다수는 이러한 폭력시위에 염증을 느끼고 있어서 역풍이 불고 있으며 과격 소수파는 분리되기 시작한 만큼 경찰에 진압당할 위험도 높아졌다. 이래저래 공항 점거에 이은 또한번의 자충수였다. 이렇게 될 경우 앞으로 10000명 이하의 소수 집회는 모두 불허되고, 더 나아가 8월 31일 민간인권전선의 대규모 집회도 폭력사태를 이유로 불허되며, 강행을 막기 위해 주요 도로에도 점거금지명령을 법원이 때리고 경찰이 마구잡이 불심검문을 하는 등 부작용이 벌어질 가능성이 아주 높다. 결과적으로 소수 과격파가 제대로 [[팀킬]]을 해 버리고, 8월 18일 대규모 평화시위에서 홍콩의 길 인간 띠로 이어진 비폭력의 의미까지 퇴색되어버렸다. 이래서야 지지를 받을 수도 없고, 시위대 자체가 분열되어 내분으로 자멸할 가능성만 더 높아졌다.[* 비폭력 기조로 계속 가면 시위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으며, 어떻게 해서든 시위를 빨리 끝내고 싶었던 홍콩 정부나 중국 정부가 일부러 폭력시위를 유도해 진압당하기 쉽게 만든 면도 있었다. 지하철 운행을 모두 끊어버려 퇴로를 막아 버린게 그 대표적인 예이다. 화염병 투척 등은 전술한 것처럼 시위대로 위장한 [[중국 인민무장경찰부대]] 부대원 등이 저질렀을 가능성도 높다. 다른 시위에선 화염병이 등장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쨌든 간에 소수 과격파만 남은 시위에서 이러한 세작들에 의해 쉽게 선동당하여 이들의 함정에 말려드는 것도 엄연히 문제이며 시위대에 책임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